뉴욕, 1954년 ⒸEstate of Vivian Maier, Courtesy of Maloof Collection and Howard Greenberg Gallery, NY

온라인 게임에서 원래 내가 키우던 캐릭터가 아닌 또 다른 캐릭터를 일컫는 말,‛부캐’. 유명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연예인들이 전혀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는 모습이 인기를 끌면서 부캐 열풍이 확산됐다.‛부캐’라는 단어 사용이 일상생활로 확대되면서 본업 이외의 취미생활을 즐기거나, 평소 나의 모습이 아닌 새로운 캐릭터를 가리키는 말로 활용되고 있다. 이제는 우리에게 익숙해진 이 단어가 잘 어울리는 한 사진가가 있다. 미스터리한 천재 사진가로 불리며, 사진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데뷔를 한 비비안 마이어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임정훈

사진가로서의 그녀의 모습은 보모라는 본업에 가려진 완벽한 부캐였다. 그녀는 평생 보모로 일하며 15 만 장의 사진을 찍었지만 생전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다. 스스로 무명을 선택한 비비안 마이어의 이름과 작품은 작은 경매장에서 우연히 그녀의 사진을 낙찰받은 존 말루프에 의해 공개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정식으로 사진 교육을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남긴 사진들은 당대의 거장들과 비견될 정도로 찬사를 받으며 전세계에 비비안 마이어 열풍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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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비밀스러운 사진가의 기록이 담긴 《비비안 마이어사진전(VIVIAN MAIER)》이 오는 11월 13일까지 그라운드시소 성수에서 열린다. 비비안 마이어의 역대 최대 규모 세계 투어인 이번 전시는 프랑스 파리 뤽상부르 미술관과 이탈리아 토리노 왕립 박물관에 이어 아시아 최초로 서울에서 개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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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1960년 ⒸEstate of Vivian Maier, Courtesy of Maloof Collection and Howard Greenberg Gallery, NY

이번 전시에서는 비비안 마이어가 1959년 아시아 지역을 여행하면서 찍은 사진들과 희귀한 컬러 사진, 그동안 공개된 적 없었던 컷들이 공개된다. 아울러 전시 작품 중에는 슈퍼 8 필름(Super 8 Film) 형식의 영상과 비비안 마이어의 목소리가 담긴 오디오가 포함됐으며, 그녀의 트레이드마크이자 소장품인 롤라이플렉스, 라이카 카메라와 모자를 함께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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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 마이어는 늘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거리에 나가 사진을 찍었다. 그녀는 구체적인 테마를 정해놓고 이미지를 찾기보다 눈에 들어오는 어떤 것이 있을 때마다 사진을 찍었다. 지금 이순간, 여기서 이미지를 수집해야만 하는 사명을 띤 사람처럼 셔터를 눌렀다. 그런 그녀에게 거리는 세상과 만나는 장소이자, 사진을 익히고 자신의 삶을 지키는 곳이었다. 비비안 마이어는 빛과 그림자 속에서 온갖 방향으로 교차하는 익명의 사람들을 담았는데, 그녀의 사진 속에서 거리는 평범한 사람들의 무대가 된다. 등장하는 사람들은 어느새 배역을 부여 받아 위트와 사랑, 빈곤, 우울, 죽음 등의 다양하고 생생한 이미지들이 혼재되어 있는 하나의 역할극을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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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서 비비안 마이어는 자신의 시선을 끄는 얼굴들 앞에 멈춰 서서 셔터를 누르곤 했다. 화려한 도시와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유토피아의 그늘에 가려진 사람들부터 가난과 노동의 고통을 감당하는 얼굴, 이와 반대로 화려하게 치장한 상류층의 사람들까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직면했다. 사진을 통해 세상을 이해했던, 철저하고 성실한 관찰자로서 마이어는 인물들의 표정은 물론 빠르게 순환하는 도시의 흐름 속 한 순간을 그대로 박제시켰다. 그녀의 사진은 전체를 보여주기보다는 파편화된 이미지를 활용해 숨겨진 부분을 상상하게 하는 내러티브의 힘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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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 마이어의 자화상은 현재 많은 이들이 즐기는 셀피(Selfie)의 원조 격이다. 그녀가 유지했던 비밀스러운 사생활처럼 자화상 역시 이미지 속에 다양한 시각적 효과를 활용해 자신의 존재를 담았다. 투영과 반사, 그림자 놀이, 실루엣, 이미지 속의 이미지, 암시와 은유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을 통해 다채로운 사진 언어를 구사했다. 그녀가 보여주는 세련된 구도는 미감을 자극하고 생생한 피사체는 무언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자신을 철저하게 숨긴 그녀가 셀피의 원조로, 셀카의 여신으로 불리게 된 것도 미스터리 했던 그녀의 삶처럼 아이러니하다. 어쩌면 마이어는 ‘세상 속의 나’보다 ‘뷰 파인더 속의 나’를 더 편하게 생각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자신조차 기록의 대상으로 여겼을 수도 있다. 비비안 마이어는 나이가 들어가며 서서히 자화상 찍기를 멈춰갔는데 그동안 남긴 다양한 자화상은 사진으로나마 그녀가 스스로를 존재시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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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든 메리 포핀스. 비비안 마이어를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다. 평생을 보모로 살아온 그녀를 보고 하는 말이긴 하지만, 누구보다 아이들과 가깝게 지낸 그녀였기에 아이들의 아름다운 순간을 포착하는 눈도 남달랐다. 영화 속 메리 포핀스처럼 평범한 보모는 아니었지만 아이들을 바라보는 선입견 없는 시선을 바탕으로 아이들의 감정의 표현, 몸짓, 시선, 놀이 등을 담을 수 있었고, 그들만의 고유한 세계를 발견할 수 있었다.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을 두고 평론가나 감상자는 저마다의 해석으로 상상력을 펼친다. 그러나 정답은 없다. 비비안마이어가 숨겨놨던 15만 장의 필름 속에 그녀가 말하고자 했던 바를 선입견 없이 경험해보길 바란다.

센트럴파크 동물원, 뉴욕, 1959년 9월 26일ⒸEstate of Vivian Maier, Courtesy of Maloof Collection and Howard Greenberg Gallery, NY

 

장소 미상, 날짜 미상ⒸEstate of Vivian Maier, Courtesy of Maloof Collection and Howard Greenberg Gallery, NY

 

INFO. 글 김 수 진 기자, 전시 사진 임 정 훈 기자


전시명:《비비안 마이어 사진전(VIVIAN MAIER)》
전시 기간: 11월 13일까지(매월 첫째 주 월요일 휴관, 공휴일 정상운영)
전시 장소: 그라운드시소 성수
(서울시 성동구 아차산로17길 49 생각공장 지하1층)
전시 시간: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입장 마감: 오후 6시)
문의: 070-4107-7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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